초여름 바람 속 고요를 담은 괴산 피세정

초여름의 햇살이 들판에 부드럽게 내려앉던 날, 괴산 문광면의 피세정을 찾았습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낮은 언덕 아래로 푸른 논 사이에 자리한 정자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연못 위의 수면이 잔잔히 흔들리고, 그 위로 비치는 피세정의 기와지붕이 은은하게 반짝였습니다. 주변의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자연스러운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고, 그 그늘 아래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정자는 크지 않았지만, 단정한 선과 조용한 기운이 공간을 감쌌습니다. 물가의 냄새와 나무의 향이 어우러져 마음이 고요해졌습니다. 처음 마주한 피세정은 소박했지만, 오랜 세월 사람의 사유와 쉼을 품어온 장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 들길 끝에서 마주하는 정자의 풍경

 

피세정은 괴산읍에서 차로 약 15분 거리, 문광저수지 인근의 평야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피세정’을 입력하면 작은 마을길을 따라 이어진 비포장 도로로 안내되며, 길 양옆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도중에 ‘피세정 300m’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차는 정자 앞 공터에 가능하며, 차를 세우고 2분 정도 걸으면 연못가의 정자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문광면사무소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20분 거리입니다. 도로 옆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여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접근하는 길 자체가 정자까지의 여정을 천천히 음미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2. 물가에 앉은 정자의 단아한 구조

 

피세정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정자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네모 반듯한 평면 위에 팔작지붕을 얹은 단층 구조입니다. 기둥은 붉은 빛을 띠는 소나무로 세워져 있고, 기단은 거칠게 다듬은 돌을 층층이 쌓아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마루는 연못 쪽으로 살짝 돌출되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처마 밑의 풍경이 맑은 소리를 냈고, 그 울림이 물결과 함께 멀리 퍼졌습니다. 내부에는 방 하나와 대청이 이어져 있으며, 나무 바닥은 세월의 결로 반들반들했습니다. 지붕의 곡선은 부드럽고, 기와의 회색빛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졌습니다.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절제된 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였습니다.

 

 

3. 피세정의 유래와 정신적 의미

 

피세정은 조선 후기의 학자 송시열의 제자 중 한 명인 유학자 이정재(李廷才)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세(避世)’라는 이름은 세속을 떠나 학문과 도의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세상 번잡함을 피해 고요히 살며 도를 닦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정자 현판의 글씨 또한 단정한 해서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정자는 인근 산과 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자리해 있어, 세속과 거리를 두고 사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자리였습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지역 유림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짓던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자연과 정신이 어우러진 전통 사유의 장소라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4. 정갈하게 관리된 주변 환경

 

정자 주변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었고, 수초가 일정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연못 위에는 잉어 몇 마리가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수면에 일렁이는 빛이 정자의 바닥에 비쳤습니다. 마당에는 오래된 향나무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한쪽에는 작은 벤치가 놓여 있었습니다. 안내 표지판과 돌비가 정자 입구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글씨는 깔끔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연못 위로 잠자리와 제비가 날아다니고, 겨울에는 얇은 얼음이 생겨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습니다. 관리가 과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고요함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5. 피세정 주변의 추천 동선

 

피세정 관람 후에는 문광저수지와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정자에서 차로 5분 거리의 문광저수지는 괴산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호수를 따라 걷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해질 무렵의 노을빛이 물 위로 비치면 장관이 펼쳐집니다. 또한 인근의 ‘문광서원’은 조선시대 학문과 예의의 중심지로, 피세정과 학맥적으로도 연관이 있습니다. 점심은 문광면의 ‘한결식당’에서 된장찌개나 들깨수제비를 추천합니다. 고즈넉한 정자와 평온한 호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하루 코스로 여유롭고 만족스러웠습니다.

 

 

6. 방문 시 유용한 정보와 팁

 

피세정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가 가장 관람하기 좋으며, 아침이나 해질 무렵에는 햇빛이 비스듬히 비쳐 정자의 분위기가 한층 고즈넉해집니다. 주차장은 정자 앞 공터를 이용하면 되고, 비가 올 경우 진입로가 약간 미끄러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부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여름철에는 모기가 많으므로 밝은색 긴 옷차림이 좋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기 때문에 따뜻한 겉옷이 필요합니다. 관람 시에는 정자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함께 느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마무리

 

피세정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단아함 속에 깊은 고요와 품격이 깃든 정자였습니다. 자연 속에 스며든 건축물이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곳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물가에 비친 지붕의 곡선, 마루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그리고 바람이 전하는 소리가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세운 선비의 마음처럼, 세상의 소란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봄의 연둣빛이 연못을 감싸는 시기에 다시 찾아, 또 다른 색의 피세정을 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이 정자에서, 마음의 쉼표 하나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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