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파사성지에서 만난 신라 산성의 고요한 위엄

늦여름의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던 날, 여주 대신면의 파사성지를 찾았습니다. 들판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매미소리가 진하게 울렸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부서지듯 흔들렸습니다. 산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돌로 쌓인 성벽의 일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래된 돌은 거칠게 마모되어 있었지만, 그 위로 얇게 핀 이끼가 오히려 세월의 결을 살려주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아 공기가 맑고, 바람이 불 때마다 숲 전체가 함께 흔들렸습니다. 고요했지만 그 속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이곳은 신라 시대의 흔적이 살아 있는, 천년의 시간을 품은 공간이었습니다.

 

 

 

 

1. 위치와 접근 동선

 

파사성지는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산자락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파사성지’를 입력하면 파사산 등산로 입구까지 안내됩니다. 입구에는 문화유산 안내판과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주차는 인근 소형 공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정상까지는 약 2km 거리로, 완만한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오르면 성지의 돌담이 나타납니다. 대중교통으로는 여주역에서 대신면행 버스를 타고 ‘천서리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진입 가능합니다. 초입의 흙길은 평탄하지만 중간부터 돌길이 많아 등산화 착용이 좋습니다. 산 중턱에서부터는 숲이 촘촘하게 이어져 햇빛이 부드럽게 걸러지고, 가끔씩 멀리 남한강의 물결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2. 성곽의 구조와 첫인상

 

파사성은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산성으로,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형태입니다. 전체 둘레는 약 1,200m이며, 성벽의 높이는 3~5m 정도로 추정됩니다. 현재는 일부 구간의 석축만 남아 있지만, 돌의 크기와 쌓는 방식으로 당시의 건축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큰 화강암을 겹겹이 쌓아올린 성벽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이어져 있으며, 일부 구간은 복원되어 원형을 보여줍니다. 정상 부근에는 치(雉)와 망루지, 성문지로 추정되는 평탄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곳에 서면 사방의 시야가 트여 여주 평야와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단단한 돌 구조물과 부드러운 숲의 대비가 인상적이었고, 세월의 무게가 고요히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의미

 

파사성은 신라 진흥왕 시기(6세기 중엽)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시대 한강 유역을 둘러싼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신라는 한강 이남의 방어선을 확보하기 위해 여주, 이천, 원주를 잇는 성곽망을 조성했는데, 파사성은 그 중심에 해당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이 파사성을 쌓고 군사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남한강을 따라 북상하는 백제 세력을 견제하고, 한성으로 향하는 교통로를 감시하던 군사 거점이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과 유구는 신라 초기 산성의 구조와 축성기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안내문에는 “파사성은 삼국시대 남한강 유역의 패권을 둘러싼 역사의 현장”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바람결 속에서 전쟁의 흔적이 희미하게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현장의 분위기

 

성지는 자연과 함께 조용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일부 구간의 성벽은 무너져 있지만, 돌의 결합 상태는 여전히 단단하며, 복원된 구간은 원형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주변에는 안내판과 탐방로 표식이 정비되어 있어 탐방이 어렵지 않습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돌벽의 표면에 닿을 때마다 돌의 질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그림자가 부드럽게 번졌습니다. 바람이 불면 돌 사이에서 낮은 울림 같은 소리가 났고, 풀잎이 흔들리며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정상부의 평탄지에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바라보는 남한강의 풍경이 고요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적어 자연스럽게 보존된 모습이 오히려 이 유산의 품격을 더했습니다.

 

 

5. 인근 둘러볼 만한 곳

 

파사성지를 관람한 뒤에는 가까운 ‘여주 신륵사’를 방문하면 좋습니다. 남한강변 절벽 위에 자리한 신라 고찰로, 파사성과 시대적 맥락을 공유합니다. 또한 ‘명성황후생가’에서는 조선 후기의 역사와 여주의 전통 문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점심은 대신면의 ‘여주쌀밥정식’이나 ‘강변두부촌’에서 지역 재료로 만든 한식을 추천합니다. 오후에는 ‘여주도자세상’으로 이동해 도자기 전시와 체험을 즐기면 하루 코스가 완성됩니다. 산성과 절, 그리고 강이 어우러진 여주의 자연과 역사를 함께 느끼기에 좋은 여정이었습니다.

 

 

6. 관람 팁과 유의사항

 

파사성지는 별도의 입장료가 없으며 상시 개방되어 있습니다. 산길이 비교적 완만하지만 돌길이 많아 등산화를 신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는 벌레가 많고, 가을에는 낙엽이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전에는 햇살이 성벽을 비스듬히 비춰 입체감이 뚜렷하며, 오후에는 남한강 쪽으로 노을이 비칠 때 풍경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돌이 미끄러우므로 탐방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안내판에는 탐방 경로가 잘 표시되어 있으며, 상단의 망루지에서는 조망이 탁 트여 사진 촬영에 좋습니다. 소음이 거의 없는 장소이므로 조용히 걸으며 천년의 시간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마무리

 

파사성지는 화려한 유적은 아니지만, 한 시대의 경계와 전쟁, 그리고 사람들의 의지가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바람과 돌, 숲과 하늘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 고요함 속에는 천년 전 병사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돌 하나, 이끼 한 줄기에도 시간이 스며 있었고, 무너진 흔적조차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봄, 신록이 돋아 성벽 사이로 초록빛이 번질 때 와서 새로운 생명과 역사의 대비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파사성지는 과거의 전쟁을 넘어, 지금은 평화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여주의 귀한 국가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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